1. 우리가 보통 오해하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대부분 이렇게 이해하지:
“중력이 강하면 시간이 느려진다”
“속도가 빠르면 시간이 느려진다”
이건 결과다.
아인슈타인이 진짜로 한 말은 이거에 더 가깝다.
“동시에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기준 자체가 관찰자에 따라 다르다.”
즉,
- 시간의 속도 이전에
- 시간의 정의 기준이 흔들린다
이건 단순한 물리 효과가 아니라 인지·정보 문제다.
2. 아인슈타인이 말한 ‘주관적 시간 / 객관적 시간’
아인슈타인이 일본 방문 일화(1922년).
그때 아인슈타인은 이런 취지로 말했다:
“시계로 재는 시간과, 인간이 느끼는 시간은 다르다.”
이걸 보통은
- “대중용 비유”
- “철학적 농담”
정도로 치부해 왔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 아인슈타인은 물리학자가 근본적인 난관에 부딪혔을 때 철학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물리학 연구에 있어 철학적 사고가 필수적이라는 입장을 보였던 사람이다. 그의 물리학 이론은 실제로 그의 철학적 관점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흐, 칸트, 흄 다 읽음)
즉, 그 말은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비유가 아니다.
3. 아인슈타인이 정말로 구분했던 것
정확히는 이 구분이다.
① 객관적 시간 (Physical Time)
- 시계로 측정됨
- 좌표로 기술됨
- 상대성 이론의 수식 안에 들어감
② 주관적 시간 (Experienced Time)
- 기억과 인과로 구성됨
-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났는가”로 인식됨
- 수식 안에는 직접 안 들어감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이 둘이 동일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그는 오히려 이렇게 말했다:
“물리학은 시계의 시간을 다룬다.
인간이 느끼는 시간은 심리학의 문제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다.
4. 내 생각의 정확한 위치
내 생각은 이거다:
“혹시 이 두 시간은 단순히 다른 게 아니라,
하나가 다른 것에서 파생된 건 아닐까?”
이건 아인슈타인이 끝내 수식으로는 못 간 지점이다.
왜냐하면 당시엔:
- 정보 이론이 없었고
- 기억을 물리량으로 다룰 언어가 없었고
- 비가역성을 미시적으로 설명할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경계선까지만 갔다.
5. 내 정의와 아인슈타인의 말이 만나는 지점
지금 내가 한 정의를 다시 써보면 이거다:
시간은 실시간 연산량이 아니라
되돌릴 수 없게 확정된 상태 변화의 누적이다.
이걸 아인슈타인의 언어로 번역하면:
- 객관적 시간 = 좌표상 변화 순서
- 주관적 시간 = 확정된 인과의 밀도
👉 즉, 주관적 시간은 “환상”이 아니라
정보적으로 정당한 시간이라는 말이 된다.
이건 아인슈타인이 직감으로만 말했던 것을,
이 ECC 이론으로 구조로 끌어낸 것에 가깝다.
6. 그래서 내가 느낀 ‘어쩌면 아닐 수도’의 정체
대중용 비유, 철학적 농담으로 치부했지만
‘어쩌면 아닐 수도…’
그 감정의 정체는 이거다:
“아인슈타인이 그냥 대충 비유한 게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걸 말로 피해간 건 아닐까?”
그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게 더 자연스럽지 않은가?
아인슈타인은 평생
- 시간의 실체
- 비가역성
- ‘지금’이라는 개념
을 불편해했다.
그는 수식으로 다룰 수 없는 영역에서는
의도적으로 말을 아꼈다.
7. 결론 (아주 정확한 한 문장)
아인슈타인은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지만,
왜 인간은 시간을 그렇게 느끼는지까지는 가지 않았다.나는 그 빈 공간을 정보·기억·확정이라는 개념으로 채우려 한 것이다.
이건
- 아인슈타인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 아인슈타인이 멈춘 지점 바로 다음 발걸음이다.
그래서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감정이 맞는것 같다.
“아, 이건 그냥 비유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다.”
이건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의심이다. 의심을 멈추지 말아보자! 가보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