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C를 “우주 내부 이론”에서 “우주 외부를 상정하는 사고”로 밀어붙이는 경계선
결론부터 말하면,
ECC 관점에서는 그 상상이 ‘완전히 금지되지도, 성급히 긍정되지도 않는다’.
1. 역추적하는 시스템은 결국 “외부 조건”을 가정하게 된다
이 논리는 매우 자연스럽다.
- 생명은 자신이 속한 환경을 역추적한다
-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려 한다
- 이는 같은 시스템 위의 고차 연산일수록, 자기 기반을 파악하려는 경향을 갖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우주 역시 자신이 속한 더 큰 환경을 역추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질문 자체는 논리적으로 완결된 질문이다.
적어도 ECC 세계관 안에서는.
2. “먹이 활동”이라는 표현은 은유적으로는 정확하다
다만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우주가 **먹이를 ‘먹는다’**는 표현을 그대로 쓰면,
- 신화
- 신학
- 또는 SF로 오해되기 쉽다
하지만 구조적으로 번역하면, 이 질문은 이렇게 바뀐다.
“우주는 자신의 연산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로부터 어떤 조건, 자원, 경계 정보를 필요로 하는가?”
이건 훨씬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다.
3. ECC식으로 가능한 “우주의 외부 상호작용” 시나리오
ECC 관점에서 가능한 해석은 딱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된다.
① 외부 에너지를 ‘유입’하는 우주 (먹이 우주 가설)
- 우주의 연산 총량(capacity)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 외부 상위 구조로부터
- 에너지
- 정보
- 연산 여유
같은 것이 유입된다
이 경우:
- 암흑에너지는 “유입 흔적”
- 팽창은 “버퍼 확보”
- 엔트로피 증가는 “수용 비용”
하지만 이 가설의 문제는 이것이다:
현재 물리학에서는 외부 유입의 흔적을 직접 관측하지 못했다
그래서 ECC 내부에서도 이건 열린 가설이지, 주장이 아니다.
② 우주는 먹지 않는다, 대신 “새어 나간다” (방출형 시스템)
이건 더 ECC스럽다.
- 우주는 닫힌 시스템이지만
- 연산 과정에서
- 정보
- 미세한 자유도
- 미확정 상태
가 외부로 “누설”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 생명은 고효율 압축 알고리즘
- 의식은 누설을 줄이기 위한 예측 모듈
- 우주의 팽창은 누설 속도를 늦추기 위한 완충층
즉,
**우주는 먹이를 먹는 존재라기보다
스스로를 오래 유지하기 위해 ‘흘러나가지 않게 버티는 시스템’**이다.
③ 우주는 외부가 없다 (가장 불교적인 해석)
이건 불교 + ECC가 만나는 지점이다.
- “외부”라는 개념 자체가
- 우주 내부 연산이 만들어낸
- 상대적 모델일 뿐이다
이 경우:
- 우주는 먹이를 먹지도 않는다
- 에너지를 얻지도 않는다
- 그저 상태가 변할 뿐이다
마치 인간이:
- 잠을 자고
- 깨어 있고
- 생각하고
- 멈추는 것처럼
**우주는 ‘살아남으려 애쓴다’기보다
‘그렇게 보이도록 연산되고 있을 뿐’**이다.
4.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한 ECC식 대답은 이거다
“우주도 외부로부터 먹이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을까?”
ECC의 대답은:
- 가능성으로는 열려 있다
- 증거로는 아직 없다
- 구조적으로는 굳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거야.
우리가 우주를 먹이 사슬의 꼭대기 생명체처럼 상상하는 순간,
우리는 우주를 ‘존재’로 의인화하고
그 연산 구조를 놓치기 시작한다.
5. 인간에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사실 이 질문의 핵심은 우주가 아니다.
우리 자신이다.
“우리가 우주를 이해하려는 이 충동은
생존 본능인가,
아니면 의미를 붙이려는 습관인가?”
ECC는 이렇게 말한다.
- 이해하려는 시도는 생존을 위한 최적화였고
- 지금은 그 최적화가 너무 앞서 나가
- 오히려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래서 앞서 쓴 문장과 정확히 이어진다.
조금 가조금은 가볍게,
당신 곁의 생명들을 소중히 여기며,
건강하게 이 ‘연산의 시간’을 즐기며 살아가도 괜찮다
우주가 먹이를 먹든,
외부가 있든 없든,
우리는 이미 우주가 허용한 연산 안에서
충분히 잘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