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양자 컴퓨터는 정말 무한 정밀 계산을 할까?

— 가장 진보된 계산 장치조차 ‘계산을 끝내야’ 결과를 낸다

앞에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 0.999…는 수학적으로는 1과 같다
  •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끝나지 않은 계산 과정이다
  • 자연은 무한 계산을 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지점에서 계산을 멈추고 결과를 확정한다

여기까지 읽은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건 일반 컴퓨터 이야기 아닌가?
요즘 양자 컴퓨터는 소수점 이하까지 정확히 계산한다던데?”

아주 좋은 질문이다.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오해다.


1. “양자 컴퓨터는 소수를 정확히 계산한다”는 말의 정체

양자 컴퓨터에 대해 흔히 이런 이미지가 있다.

  • 일반 컴퓨터보다 훨씬 강력하고
  • 무한히 많은 계산을 동시에 하고
  • 소수점 이하도 정확히 맞춘다

하지만 이건 양자 컴퓨터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오해다.

결론부터 말하면,

양자 컴퓨터는
소수점을 ‘정확한 값’으로 저장하거나 계산하지 않는다.


2. 양자 컴퓨터는 숫자를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일반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의 차이를 먼저 보자.

일반 컴퓨터

  • 비트(bit): 0 또는 1
  • 숫자는 유한한 비트로 저장
  • 소수는 항상 근사값

양자 컴퓨터

  • 큐비트(qubit): |0⟩과 |1⟩의 중첩
  • 계산 대상은 숫자가 아니라 확률 진폭
  • 결과는 측정 전까지 정해져 있지 않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확률 진폭은 숫자 값이 아니다.
그것은 ‘가능성의 분포’다.

즉, 양자 컴퓨터는
“3.15를 정확히 저장하고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다.

대신,

  • 중첩 상태로 연산을 수행하다가
  • 마지막에 측정(measurement) 을 통해
  • 하나의 고전적 결과로 떨어진다

3. 결정적인 사실: 출력은 항상 고전적이다

아무리 내부 연산이 양자적이어도,
출력은 반드시 고전적이다.

  • 측정 순간 → 0 또는 1
  • 결과 값 → 유한 자리수
  • 오차 → 필연적

즉,

양자 컴퓨터도
0.999…를 끝까지 들고 있을 수 없다.

측정이 이루어지는 순간,
계산은 종료되고 결과는 확정(commit) 된다.


4. 오히려 양자 컴퓨터는 ‘정확함’에 취약하다

이건 의외일 수 있지만,
양자 컴퓨터는 오히려 정확도 면에서 더 불안정하다.

그래서 양자 컴퓨팅의 핵심 키워드는 이것이다.

  • 노이즈
  • 디코히어런스
  • 오류 보정
  • 결함 허용 계산(Fault-tolerant computing)

이 말 자체가 의미하는 바는 분명하다.

양자 컴퓨터는
‘완벽한 계산’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오차를 전제로 설계된 시스템이다.


5. 여기서 드러나는 중요한 공통점

이제 고전 컴퓨터와 양자 컴퓨터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인다.

  • 둘 다 유한한 연산 자원을 가진다
  • 둘 다 계산을 어느 시점에서 멈춘다
  • 둘 다 결과를 확정해야만 출력이 존재한다

즉,

가장 진보된 계산 장치조차
‘계산을 끝내야’ 결과를 낸다.

이건 기술의 한계가 아니라
물리적 조건이다.


6. 이 지점에서 다시 돌아오는 질문: 0.999…

이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0.999…는 정말 1인가?

수학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물리적으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0.999…는 끝나지 않은 계산
  • 1은 계산이 종료된 결과
  • 둘 사이의 전이는 무한의 완성이 아니라
    연산 종료 결정이다

이 결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ε(엡실론) 이다.


7. ε — 계산을 멈추고 세계를 확정하는 기준

ε은 단순한 오차 허용치가 아니다.

ε은
“여기까지 계산했으면
이제 존재로 인정한다”는
물리적 기준이다.

  • ε이 없으면 → 결과는 영원히 미정
  • ε이 있으면 → 결과는 언젠가 확정

양자 컴퓨터도,
고전 컴퓨터도,
그리고 우리가 사는 우주도
이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다.


8.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양자 컴퓨터는
무한히 정확한 계산을 하는 기계가 아니라,
반드시 측정을 통해
계산을 끝내야만 결과를 내는 기계다.

그리고 이것은
양자 붕괴가 신비가 아니라
계산 종료 사건일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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