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값이 있으면, 그것은 존재한다.”
하지만 물리학에서 이 문장은 항상 참이 아니다.
특히 계산이 끝나지 않은 값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1. ‘계산 중’인 값은 존재일까?
앞 장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 0.999…는 수학적으로 1과 같다
- 그러나 0.999…는 끝나지 않은 계산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끝나지 않은 계산 결과는, 이미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학에서는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은 수학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2. 자연은 계산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
자연은 다음 조건을 벗어나지 않는다.
- 유한한 시간
- 유한한 에너지
- 유한한 정보 처리 능력
즉, 자연은 무한 계산을 수행할 수 없다.
우리가 종이에
0.999999999…
라고 쓸 수는 있어도,
우주 어딘가에서
“소수점 이하 무한 자리까지 계산된 상태”
가 실제로 구현되는 일은 없다.
👉 자연에서 무한 계산은 정의만 있을 뿐, 구현은 없다.
3. 그래서 자연은 ‘어디선가 멈춘다’
컴퓨터를 떠올려 보자.
- 계산은 항상 어떤 자리수에서 잘린다
- 그 잘림이 바로 반올림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반올림은 편의가 아니라 필연이다.
컴퓨터가 일부러 대충 계산해서 반올림하는 게 아니다.
더 계산할 자원이 없어서 멈추는 것이다.
자연도 동일하다.
4. 존재는 과정이 아니라 ‘출력’이다
여기서 관점을 바꿔보자.
- 계산 중인 값 → 과정
- 계산이 끝난 값 → 출력
물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언제나 출력값이다.
예를 들어,
- 공중에 떠 있는 확률 구름은 관측되지 않는다
- 관측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결과다
즉,
존재란, 계산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아직 계산 중이라면,
그것은 “가능성”이지 “존재”가 아니다.
5. 0.999… → 1 은 ‘동일성’이 아니다
수학에서
0.999… = 1
은 항등식(identity) 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보면 이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 0.999… : 끝나지 않은 연산 상태
- 1 : 계산이 종료되어 확정된 상태
이 둘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우리는 왜 자연이 갑자기 “결과 하나”를 선택하는지
영원히 설명할 수 없다.
6. 반올림은 ‘물리적 커밋(commit)’이다
자연은 계산을 하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한다.
“여기까지다. 이제 결과를 확정한다.”
이 순간이 바로 커밋(commit) 이다.
-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 더 이상 계산 자원이 없을 때
- 시스템이 스스로 종료 조건에 도달했을 때
확률은 결과로 바뀌고,
과정은 존재로 바뀐다.
7. 이 종료 조건에는 이름이 필요하다
그 종료 조건을
이 글에서는 이렇게 부르겠다.
ε (엡실론)
ε는 어떤 특정한 숫자가 아니다.
- “이 정도면 충분히 확정되었다”라는
- 자연이 허용하는 최소 결정 기준이다.
너무 작으면
→ 세계는 영원히 계산 중으로 남고
너무 크면
→ 세계는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우리는 ε의 정확한 값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존재가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가, ε가 존재함을 증명한다.
8. 양자 붕괴는 관측이 아니라 종료다
이제 익숙한 문제로 돌아가 보자.
- 왜 양자 중첩은 갑자기 붕괴할까?
- 왜 관측 순간에만 결과가 나올까?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은 이것이다.
붕괴는 관측 때문이 아니라
계산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어서 발생한다.
관측자는 원인이 아니라
마지막 확인자일 뿐이다.
9. 이 장의 결론
정리하자면,
- 자연은 무한 계산을 하지 않는다
- 계산이 끝났을 때만 결과가 존재한다
- 0.999…에서 1로의 전이는
수학적 동일성이 아니라 물리적 확정 사건이다
그리고 이 관점은
양자역학, 시간, 중력, 우주의 구조까지
다시 보게 만든다.
다음 장에서는 이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시간은 왜 관측자마다 다를까?
그리고 계산의 종료 속도는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
— 제5장. 상대성이론 — 시간은 왜 관측자마다 다를까 에서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