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계산이 끝났을 때만 존재는 확정된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값이 있으면, 그것은 존재한다.”

하지만 물리학에서 이 문장은 항상 참이 아니다.
특히 계산이 끝나지 않은 값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1. ‘계산 중’인 값은 존재일까?

앞 장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확인했다.

  • 0.999…는 수학적으로 1과 같다
  • 그러나 0.999…는 끝나지 않은 계산 과정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긴다.

끝나지 않은 계산 결과는, 이미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수학에서는 “그렇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연은 수학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2. 자연은 계산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

자연은 다음 조건을 벗어나지 않는다.

  • 유한한 시간
  • 유한한 에너지
  • 유한한 정보 처리 능력

즉, 자연은 무한 계산을 수행할 수 없다.

우리가 종이에
0.999999999…
라고 쓸 수는 있어도,

우주 어딘가에서
“소수점 이하 무한 자리까지 계산된 상태”
가 실제로 구현되는 일은 없다.

👉 자연에서 무한 계산은 정의만 있을 뿐, 구현은 없다.


3. 그래서 자연은 ‘어디선가 멈춘다’

컴퓨터를 떠올려 보자.

  • 계산은 항상 어떤 자리수에서 잘린다
  • 그 잘림이 바로 반올림이다

중요한 사실은 이것이다.

반올림은 편의가 아니라 필연이다.

컴퓨터가 일부러 대충 계산해서 반올림하는 게 아니다.
더 계산할 자원이 없어서 멈추는 것이다.

자연도 동일하다.


4. 존재는 과정이 아니라 ‘출력’이다

여기서 관점을 바꿔보자.

  • 계산 중인 값 → 과정
  • 계산이 끝난 값 → 출력

물리적으로 의미가 있는 것은 언제나 출력값이다.

예를 들어,

  • 공중에 떠 있는 확률 구름은 관측되지 않는다
  • 관측되는 것은 언제나 하나의 결과

즉,

존재란, 계산이 끝났다는 사실이다.

아직 계산 중이라면,
그것은 “가능성”이지 “존재”가 아니다.


5. 0.999… → 1 은 ‘동일성’이 아니다

수학에서
0.999… = 1
항등식(identity) 이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보면 이건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 0.999… : 끝나지 않은 연산 상태
  • 1 : 계산이 종료되어 확정된 상태

이 둘 사이에는 질적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무시하면,
우리는 왜 자연이 갑자기 “결과 하나”를 선택하는지
영원히 설명할 수 없다.


6. 반올림은 ‘물리적 커밋(commit)’이다

자연은 계산을 하다가
어느 순간 이렇게 말한다.

“여기까지다. 이제 결과를 확정한다.”

이 순간이 바로 커밋(commit) 이다.

  •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때
  • 더 이상 계산 자원이 없을 때
  • 시스템이 스스로 종료 조건에 도달했을 때

확률은 결과로 바뀌고,
과정은 존재로 바뀐다.


7. 이 종료 조건에는 이름이 필요하다

그 종료 조건을
이 글에서는 이렇게 부르겠다.

ε (엡실론)

ε는 어떤 특정한 숫자가 아니다.

  • “이 정도면 충분히 확정되었다”라는
  • 자연이 허용하는 최소 결정 기준이다.

너무 작으면
→ 세계는 영원히 계산 중으로 남고

너무 크면
→ 세계는 지나치게 단순해진다

우리는 ε의 정확한 값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존재가 발생한다는 사실 자체가, ε가 존재함을 증명한다.


8. 양자 붕괴는 관측이 아니라 종료다

이제 익숙한 문제로 돌아가 보자.

  • 왜 양자 중첩은 갑자기 붕괴할까?
  • 왜 관측 순간에만 결과가 나올까?

이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은 이것이다.

붕괴는 관측 때문이 아니라
계산이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어서 발생한다.

관측자는 원인이 아니라
마지막 확인자일 뿐이다.


9. 이 장의 결론

정리하자면,

  • 자연은 무한 계산을 하지 않는다
  • 계산이 끝났을 때만 결과가 존재한다
  • 0.999…에서 1로의 전이는
    수학적 동일성이 아니라 물리적 확정 사건이다

그리고 이 관점은
양자역학, 시간, 중력, 우주의 구조까지
다시 보게 만든다.

다음 장에서는 이 질문으로 나아간다.

그렇다면 시간은 왜 관측자마다 다를까?
그리고 계산의 종료 속도는 무엇에 의해 결정될까?

제5장. 상대성이론 — 시간은 왜 관측자마다 다를까 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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