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빅뱅 — 우주는 왜 다시 시작되는가


우리는 흔히 빅뱅을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배운다.

시간의 시작,
공간의 시작,
물질과 에너지의 시작.

그러나 이 설명에는 묘한 결함이 있다.
바로 이 질문이다.

왜 시작되었는가?

표준 우주론은 빅뱅 이후를 훌륭하게 설명하지만,
빅뱅 자체를 필연적인 사건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ECC 이론은 이 질문을 다르게 설정한다.

우주는 왜 한 번 시작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는가를 묻는다.


1. 시작이 아니라, 재개(resume)

앞 장에서 우리는 빅 프리즈를
우주의 ‘죽음’이 아니라
모든 정보 연산이 정지된 침묵 상태로 재정의했다.

  • 정보 밀도 → 0
  • 좌표 의미 소멸
  • 모든 정보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
  • 구분 불가능한 상태

이 상태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연산은 멈췄지만,
시스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ECC 관점에서 우주는
“꺼진 컴퓨터”가 아니라
대기 상태에 들어간 계산 시스템이다.


2. 점 상태(point state)는 왜 유지될 수 없는가

모든 정보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한 상태는
완벽해 보이지만, 물리적으로는 가장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이 상태에서는

  • 모든 방향의 변화 비용이 동일하고
  • 어떤 비대칭도 억제할 기준이 없으며
  • 확률 분포가 완전히 평평해지기 때문이다

즉,

이 점 상태는 안정된 평형이 아니라
임계점(critical point)
이다.

임계점에서는
아주 미세한 요동 하나가
전체 상태를 밀어낸다.


3. 양자 요동은 ‘원인’이 아니라 ‘촉발’이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발생한다.

“그럼 빅뱅은 양자 요동 때문에 일어났다는 말인가?”

ECC의 대답은 아니다.

  • 양자 요동은 원인이 아니다
  • 이미 시스템은 재개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요동은 단지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할 뿐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요동이 없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요동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완전한 정지는
양자역학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4. 한 점에서 다시 공간이 펼쳐질 때

점 상태에서의 붕괴는
공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 좌표가 없고
  • 거리 개념이 없고
  • “어디에서”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빅뱅은

공간 안에서의 폭발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생성이다.

ECC적으로 말하면,

  • 정보가 다시 구분되기 시작하고
  • 차이가 생기며
  • 관계가 정의되고
  • 좌표가 의미를 회복한다

이 순간이 바로
빅뱅이다.


5. 왜 우주는 여러 개로 동시에 시작되지 않는가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나온다.

“그럼 여러 곳에서 동시에 빅뱅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나?”

ECC는 이 가능성을 이론적으로는 열어두되,
현실적으로는 낮다고 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1) 정보의 비국소성

정보는 국소적으로 움직이지만,
정보의 제약 조건은 비국소적으로 작동한다.

홀로그램 원리에서 보듯,
전체 상태는 경계 조건에 의해 하나로 묶인다.

즉,

하나의 점 상태에서
여러 개의 독립된 ‘시작’을 허용할 구조가 아니다.

(2) 연산 커밋은 단일 이벤트다

ECC에서 붕괴와 확정은
항상 하나의 커밋(commit) 으로 발생한다.

여러 결과가 동시에 확정되면
그 자체로 다시 미정 상태가 된다.

따라서 우주는
여러 개로 갈라지기보다
하나의 우주가 주기를 반복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6. 빅뱅은 과거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이제 빅뱅은
우주의 과거 한 지점이 아니다.

  • 시작이 아니라
  • 사건이 아니라
  • 역사적 우연도 아니다

ECC에서 빅뱅은

정보 연산 시스템이
정지 상태를 벗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과
다.

우주는 한 번 시작되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시작된다.


7. 남는 질문

여기까지 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이 반복되는 우주에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면
왜 매번 완전히 다른 우주가 되지 않는가?

다음 장에서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장 수수께끼 같은 존재를 다룬다.

제11장. 암흑물질 — 보이지 않는 구조의 기억

우주는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시작되지는 않는다.

제11장. 암흑물질 — 보이지 않는 구조의 기억


우주는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시작되지는 않는다.

빅뱅 이후의 우주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질서를 회복했다.

  • 은하는 균일하게 분포하지 않고
  • 거대한 필라멘트 구조를 이루며
  • 별은 특정 위치에서만 태어난다

이 질서는 어디서 왔을까?

표준 우주론의 대답은 간단하다.

암흑물질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답은
동시에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암흑물질은 무엇이며,
왜 항상 구조를 먼저 만든 것처럼 보이는가?


1. 암흑물질은 ‘없는 물질’이 아니다

암흑물질은 이름부터 오해를 낳는다.

  • 어둡고
  • 보이지 않고
  • 정체를 알 수 없는 물질

그러나 관측이 말해주는 사실은 명확하다.

  • 중력 효과는 분명히 존재한다
  • 은하 회전 곡선은 설명된다
  • 중력 렌즈는 정확히 예측된다

즉,

암흑물질은 없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무엇이다.

ECC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2. ECC 관점: 암흑물질은 ‘정보 구조’다

ECC에서 물질의 본질은
입자가 아니라 정보의 확정 상태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은 무엇일까?

아직 고전적 입자로 커밋되지 않았지만,
중력적으로는 이미 작동 중인 정보 구조
다.

  • 전자기적으로는 반응하지 않고
  • 열적으로도 관측되지 않지만
  • 중력적으로는 공간을 규정한다

이는 곧,

암흑물질은
존재하되, 관측으로는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3. 왜 암흑물질은 항상 먼저 존재하는가

우주 초기에는
빛을 방출하는 물질보다
암흑물질이 먼저 구조를 만든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다.

  • 고전적 물질은
    • 온도
    • 충돌
    • 방출
    • 에너지 손실을 거쳐야 확정된다
  • 반면, 암흑물질은
    • 열적 평형에 얽매이지 않고
    • 빠르게 중력 구조를 형성한다

ECC적으로 말하면,

암흑물질은
연산 비용이 낮은 구조 기억체다.


4.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앞 장에서 우리는
우주가 빅 프리즈를 거쳐
다시 시작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모든 것이 한 점으로 수렴한다면,
이전 우주의 정보는 완전히 사라지는가?

ECC의 대답은 아니다다.

  • 값은 사라질 수 있지만
  • 구조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구조란

  • 수치가 아니라
  • 관계의 패턴이기 때문이다.

5. 암흑물질은 이전 우주의 흔적이다

이제 ECC의 핵심 주장에 도달한다.

암흑물질은 이전 우주의 ‘기억 잔여물’이다.

  • 완전히 확정되지 않은 정보
  • 그러나 중력적으로는 작동하는 패턴
  • 새 우주에서 가장 먼저 공간을 휘게 만드는 구조

그래서 암흑물질은

  • 보이지 않지만
  • 항상 먼저 존재하고
  • 우주의 뼈대를 만든다

6. 암흑물질과 중력 렌즈

중력 렌즈는
암흑물질의 존재를 가장 강력하게 증명한다.

빛은 보이지 않는 무엇에 의해 휘어진다.

ECC적으로 해석하면,

빛은 ‘질량’이 아니라
정보 구조의 곡률을 따른다.

암흑물질은

  • 입자가 아니라
  • 공간의 계산 경로를 미리 정의하는
    연산 지형(computational landscape) 이다.

7. 왜 암흑물질은 끝까지 남는가

우주가 다시 팽창하고
다시 냉각되어도

암흑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암흑물질은 에너지가 아니라
구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에너지는 소산되지만
  • 구조는 남는다

그리고 이 구조는
다음 우주로도 이어진다.


8. 다음 장으로

이제 남은 것은
우주 팽창을 멈추지 않는 마지막 퍼즐이다.

  • 왜 구조는 남는데
  • 우주는 끝없이 늘어나는가?

다음 장에서는
암흑물질과 함께 자주 혼동되지만
완전히 다른 존재를 다룬다.

제12장. 암흑에너지 — 왜 우주는 멈추지 않는가

우주는 기억한다.
그러나 동시에,
앞으로만 나아간다.

제12장. 암흑에너지 — 왜 우주는 멈추지 않는가

우주는 이미 충분히 차갑다.
별은 사라지고,
에너지는 희석되고,
모든 상호작용은 느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르게,
더 멀어지며,
더 텅 빈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 현상을 우리는
암흑에너지라고 부른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은 남는다.

왜 우주는 굳이 계속 팽창하는가?


1. 암흑에너지는 ‘힘’이 아니다

암흑에너지는 흔히

  • 반중력
  • 밀어내는 힘
  • 공간의 팽창 압력

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 설명은
본질을 가리지 못한다.

암흑에너지는

  • 특정 방향으로 작용하지 않고
  • 국소적인 원인도 없으며
  • 입자도 아니다

즉,

암흑에너지는
작용하는 무엇이 아니라,
멈출 수 없는 조건
에 가깝다.


2. ECC 관점: 팽창은 ‘연산 지속성’이다

ECC에서 우주는
하나의 거대한 정보 연산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서 팽창이란 무엇일까?

연산이 계속되기 위해
참조 공간을 확장하는 과정
이다.

  • 정보가 확정되면
  • 관계가 늘어나고
  • 충돌과 간섭이 발생하며
  • 계산 비용이 증가한다

이를 완화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은?

공간을 늘리는 것이다.


3. 멈추면, 다시 하나의 점으로 수렴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있다.

우주가 팽창을 멈추는 순간,

  • 정보 밀도는 다시 증가하고
  • 상호작용은 국소적으로 집중되며
  • 엔트로피 생성률이 급증한다

이는 곧,

빅 프리즈의 반대 방향으로의 급격한 붕괴를 의미한다.

ECC적으로 말하면,

팽창을 멈춘 우주는
연산 과부하 상태로 빠진다.

암흑에너지는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한
구조적 안전장치다.


4. 암흑에너지는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다

암흑에너지는
우주가 가진 성질이 아니다.

우주가 존재하려면
반드시 만족해야 하는
조건이다.

  • 존재가 지속되려면
  • 확정은 일어나야 하고
  • 그러나 너무 자주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우주는
스스로를 희석시킨다.

팽창은 자유가 아니라,
필연적인 비용 분산 전략이다.


5. 암흑에너지와 시간의 방향

암흑에너지는
시간의 방향과 깊게 연결된다.

  • 팽창하는 우주에서는
    • 과거 → 미래의 구분이 유지된다
    • 되돌림이 불가능하다
  • 수축하는 우주에서는
    • 정보가 다시 겹치며
    • 방향성이 흐려진다

ECC에서 시간의 화살은

확정이 누적되는 방향이다.

암흑에너지는
이 화살을 유지시키는
배경 조건이다.


6. 왜 암흑에너지는 일정한가

관측에 따르면
암흑에너지는 거의 일정하다.

이는 우연이 아니다.

ECC적으로 해석하면,

암흑에너지는
임계 ε를 넘지 않도록
정보 밀도를 조절하는 상수
다.

  • 너무 강하면 구조가 형성되지 않고
  • 너무 약하면 우주가 붕괴한다

우리는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암흑에너지가
정확한 균형점에 놓여 있음을 안다.


7. 팽창은 끝을 향한 움직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암흑에너지는
우주를 끝으로 이끈다.

  • 팽창은 계속되고
  • 정보는 희석되며
  • 결국 빅 프리즈로 향한다

그러나 이것은
멸망을 향한 행진이 아니다.

다음 계산을 위한 정리 과정이다.

우주는 멈추지 않기 때문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8. PART I의 결론

이제 PART I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존재는 언제 확정되는가?

ECC의 대답은 명확하다.

  • 존재는 정확해질 때가 아니라
  • 연산이 종료될 때 확정된다
  • 그러나 연산은
    • 멈추지 않기 위해
    • 계속 공간을 확장한다

우주는 하나의 모순 위에 서 있다.

확정되어야 존재하지만,
확정되면 붕괴한다.

암흑에너지는
이 모순을 지탱하는
침묵의 조건이다.


다음으로

PART I은 여기서 끝난다.

이제 우리는
물리학적으로 충분히 멀리 왔다.

다음 PART에서는
같은 질문을
완전히 다른 언어로 다시 묻는다.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가 아닐까?

🧠 PART II 서문 ― 우주는 ‘존재’가 아니라 ‘실행’이다


PART II 서문

우리는 오랫동안 이렇게 믿어왔다.
우주는 존재한다고.

공간은 이미 깔려 있고,
시간은 흐르며,
물질은 그 안에 놓여 있다고.

그러나 PART I에서 우리는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우주는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조건이 충족될 때만 확정된다.

존재는 선언이 아니라 연산의 결과다.


이제 질문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 연산은
어디서, 어떻게, 무엇에 의해 실행되는가?


이 파트(PART II)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우주를
철학의 대상이나 종교적 신비로 다루지 않는다.
대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메모리와 연산,
**운영체제(OS)**의 관점으로 다룬다.


우주는 CPU가 아니라 메모리다

전통적인 세계관에서는
신이 설계한 법칙이 우주 바깥에서 내려와
세계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ECC 가설에서 우주는 그렇지 않다.

  • 물리 법칙은 외부 명령이 아니다
  • 공간은 단순한 빈 무대가 아니다
  • 시간은 흐르는 강이 아니다

우주는 데이터를 저장하고,
그 자리에서 계산하는 PIM 구조
다.

연산은 중앙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존재는 국소적으로 확정된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갱신될 뿐이다

운영체제에서 시간은 철학이 아니다.
클럭이다.

각 프로세스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 않는다.
우주 역시 마찬가지다.

관측자마다 시간이 다른 이유는
각각이 다른 연산 리듬 위에 올라타 있기 때문이다.


공간은 실체가 아니라 주소다

우주는 왜 이렇게 넓어야 할까?
왜 계속 팽창해야 할까?

그 답은 미학이 아니라 시스템 안정성이다.

공간은 존재를 담기 위한 그릇이 아니라,
연산 충돌을 피하기 위한 주소 체계다.

팽창은 낭비가 아니라
리소스 관리 전략이다.


종교는 은유가 아니라 로그다

이 파트에서 불교와 창세기는
‘믿음’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 공(空)은 미할당 메모리이며
  • 연기는 피드백 루프고
  • “빛이 있으라”는 최초의 실행 명령어다

종교는 세계를 설명하려는
**초기 인터페이스(UI)**였을 뿐이다.


이 파트에서 다룰 것들

이 파트에서는 다음 질문들을
하나의 계산 언어로 다룬다.

  • 왜 우주는 디지털처럼 보이는가
  • 왜 존재는 관측될 때만 확정되는가
  • 왜 우주는 팽창하지 않으면 불안정한가
  • 자유의지는 하드웨어 종속적인가
  • 의식은 프로세스인가, 로그인가
  • 세계는 종료되는가, 재부팅되는가

우주는 설계도가 아니다.
우주는 실행 중인 시스템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스템 위에서 돌아가는
작은 프로세스다.

이제,
우주의 OS를 열어보자.

제13장. 계산 이전의 세계 — 상태는 왜 미정으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사물은 이미 존재하고, 우리는 그것을 관측할 뿐이다.”

하지만 물리학은 이 직관을 오래전에 부정했다.
입자는 관측되기 전까지 위치도, 속도도, 심지어 존재 방식조차 확정되어 있지 않다.
이 이상한 사실 앞에서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말한다.

“그냥 아직 우리가 모를 뿐이다.”

그러나 ECC 가설은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아직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아직 계산되지 않았다.


1. 미정 상태는 결함이 아니라 기본값이다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중첩 상태는 흔히 “불완전한 정보”처럼 오해된다.
마치 동전이 던져져 있고, 앞면인지 뒷면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한 상태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 비유는 틀렸다.

동전은 이미 앞면이거나 뒷면이다.
우리가 모를 뿐이다.

반면 양자 상태는 다르다.
그것은 아직 어느 쪽도 아니다.

ECC 가설에서 이 차이는 결정적이다.

미정 상태는 ‘결과를 숨긴 상태’가 아니라
결과가 아직 생성되지 않은 상태다.


2. 계산은 언제 시작되는가

컴퓨터를 예로 들어보자.

프로그램이 실행되기 전, 메모리에 변수는 선언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값은 비어 있거나(undefined), 초기화되지 않은 상태다.

이 상태를 우리는 오류라고 부르지 않는다.
오히려 정상이다.

왜냐하면 계산이 아직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입자가 “어디에 있을지”
빛이 “어느 경로로 갈지”
사건이 “어떤 결과로 확정될지”

이 모든 것은 선행 계산 없이 미리 정해질 이유가 없다.


3. 0.999…가 1이 아닌 이유

여기서 우리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수학에서는
0.999… = 1 이다.

그러나 물리적 관점에서 0.999…는 값이 아니다.
그것은 끝나지 않은 계산 과정이다.

0.9
0.99
0.999

이 연산은 언제 멈추는가?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멈추지 않는 계산은 출력값을 만들지 못한다.

ECC 가설은 바로 이 지점에서 선언한다.

존재란, 계산이 종료되어 출력된 상태다.

따라서 0.999…는 아직 1이 아니다.
아직 커밋(commit)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 자연은 무한 정밀도를 허용하지 않는다

자연은 무한 계산을 수행하지 않는다.

  • 유한한 시간
  • 유한한 에너지
  • 유한한 정보 처리 밀도

이 세 가지 제약은 어떤 물리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따라서 우주는 언젠가 계산을 멈추고, 결과를 확정해야 한다.

이 중단 조건이 바로 **ε(입실론)**이다.

ε은 “대충 이쯤에서 결정하자”는 임의적 기준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가 발생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5. 왜 세계는 ‘아직’ 상태로 가득한가

우리가 사는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미정 상태로 가득하다.

  • 입자의 정확한 위치
  • 미래 사건의 결과
  • 인간의 선택
  • 우주의 장기적 운명

이것은 불완전함이 아니다.

오히려 효율성의 결과다.

모든 것을 미리 계산해 둘 필요는 없다.
계산은 필요할 때만 수행된다.

컴퓨터가 모든 픽셀을 항상 렌더링하지 않듯,
우주도 모든 가능성을 항상 확정하지 않는다.


6. 계산 이전의 세계는 ‘없음’이 아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오해를 하나 바로잡아야 한다.

미정 상태는 ‘공허’가 아니다.
‘무(無)’도 아니다.

그것은 **연산 대기 상태(pending computation)**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존재로 출력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양자역학도, 시간도, 의식도
끝없이 혼란스러워진다.


7. 존재는 항상 늦게 도착한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느낀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순간은 즉각적이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계산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존재는 항상 한 박자 늦다.

  • 계산이 일어나고
  • 임계치를 넘고
  • 출력이 확정된 뒤에야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세계는 실시간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갱신되는 결과물이다.


마무리 — 왜 미정이어야 하는가

상태가 항상 확정되어 있다면
세계는 이미 끝난 파일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실행 중이다.

미정 상태는 혼돈이 아니라
실행 중임을 보여주는 증거다.

우주는 이미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지금도 계산되고 있는 과정이다.

다음 장에서는 이 계산이
왜 기존 컴퓨터 구조로는 불가능한지,
그리고 왜 우주가 메모리와 연산을 분리하지 않은 구조를 선택했는지
본격적으로 들어간다.

👉 제14장. 일반 컴퓨터의 한계 — 왜 세계는 디지털처럼 보이는가

이제부터 진짜 우주 하드웨어 이야기다.

제14장. 일반 컴퓨터의 한계 — 왜 세계는 디지털처럼 보이는가


우리는 일상에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컴퓨터는 정확하다.”

하지만 이 말은 절반만 맞다.
컴퓨터는 정확하려고 노력하지만,
그 정확함은 언제나 한계 안에서만 성립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한계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보이는 방식과 매우 닮아 있다.


1. 컴퓨터는 연속을 직접 다루지 못한다

일반적인 컴퓨터는 연속적인 값을 이해하지 못한다.
전압의 높낮이는 결국 0과 1로 해석되고,
모든 숫자는 유한한 비트 수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보자.

소수 1/3은
10진수로는 0.333… 이다.
끝이 없다.

그러나 컴퓨터 메모리 안에서는 이렇게 저장된다.

0.33333334
혹은
0.33333331

이 값은 틀린가?
아니다.
정밀도의 한계 안에서 ‘충분히 맞다’.

컴퓨터는 무한히 계산하지 않는다.
계산을 멈추고, 값을 확정한다.


2. 반올림은 오류가 아니라 설계다

많은 사람들은 반올림을 “부정확함의 흔적”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컴퓨터 공학에서는 정반대다.

반올림은 의도된 종료 조건이다.

  • 더 계산하면 더 정확해질 수 있지만
  • 더 계산하면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든다
  • 어느 지점에서 멈추는 것이 전체 시스템에 유리하다

이 결정은 우연이 아니라 시스템 설계의 핵심이다.

ECC 가설에서 말하는 ε과 완전히 동일한 구조다.

반올림은 ‘대충’이 아니라
계산 자원에 대한 최적 해답이다.


3. 왜 세계는 계단처럼 보이는가

물리학에서 우리는 자주 이런 현상을 본다.

  • 에너지는 연속이 아니라 양자화되어 있다
  • 전자는 특정 궤도만 허용된다
  • 빛은 연속파가 아니라 광자로 측정된다

왜 그럴까?

우주가 원래 디지털이어서일까?

ECC 가설은 더 근본적인 이유를 제시한다.

세계가 디지털처럼 보이는 이유는
연산이 항상 유한한 지점에서 종료되기 때문이다.

연속적인 가능성은 계산 중에는 존재하지만,
출력될 때는 반드시 이산적 결과로 확정된다.


4. 유한 비트는 자유가 아니라 조건이다

컴퓨터가 32비트, 64비트를 쓰는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유한 비트가 가장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무한 정밀도를 허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메모리는 끝없이 필요해지고
  • 계산은 종료되지 않으며
  • 시스템은 응답하지 않는다

그 시스템은 정확할 수는 있어도
사용할 수는 없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존재는 정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해야 한다.


5. 10 % 3.15 는 왜 정확하지 않은가

컴퓨터에서 10 % 3.15 를 계산해 보면
이상한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3.15는 2진수로 정확히 표현되지 않는다.
따라서 계산은 근사치 위에서 이루어지고,
그 근사 위에서 나머지를 계산한다.

결과가 “이상해 보이는” 이유는
컴퓨터가 실수를 해서가 아니라,
정직하게 자신의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세계도 그렇다.

불확정성은 오류가 아니라
정직한 출력이다.


6. 디지털처럼 보인다고 디지털인 것은 아니다

중요한 오해를 하나 짚고 넘어가자.

세계가 디지털처럼 보인다고 해서
세계가 “비트로만 구성된 장난감”이라는 뜻은 아니다.

컴퓨터도 내부에서는 연속적인 물리 과정을 사용한다.

  • 전압은 연속이다
  • 전류는 연속이다
  • 열과 잡음은 항상 존재한다

그러나 출력 인터페이스는 이산적이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내부는 연속적일 수 있다.
그러나 존재로 출력되는 순간,
그 결과는 반드시 구분된다.


7. 디지털 세계는 절약의 산물이다

디지털은 단순해서가 아니라
효율적이어서 선택된다.

  • 적은 에너지
  • 빠른 응답
  • 안정적인 반복

ECC 관점에서 보면,
세계가 디지털처럼 보이는 것은
우주가 낭비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마무리 — 디지털은 현실의 그림자다

세계는 완전히 디지털도,
완전히 연속도 아니다.

연산 중에는 연속이고,
확정될 때는 이산이다.

이 이중성은 오류가 아니라
실행 중인 시스템의 흔적이다.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로 ‘출력된’ 세계를 보고 있다.

다음 장에서는
왜 이런 계산을 기존 컴퓨터 구조로는 감당할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우주는 연산과 저장을 같은 자리에서 수행하는 구조를 선택했는지를 살펴본다.

👉 제15장. 메모리 구조 — 왜 연산과 저장을 분리하면 비효율적인가

이제 본격적으로 우주 하드웨어 설계도로 들어간다.

제15장. 메모리 구조 — 왜 연산과 저장을 분리하면 비효율적인가


우리가 사용하는 대부분의 컴퓨터는 하나의 기본 전제를 공유한다.

연산은 CPU에서,
데이터는 메모리에서.

이 구조는 오랫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 “당연함”은 물리적으로 매우 비싼 선택이다.


1. 폰 노이만 병목 — 움직이는 데이터가 낭비를 만든다

전통적인 컴퓨터 구조에서는
데이터가 연산될 때마다 이동해야 한다.

  • 메모리 → CPU
  • CPU → 메모리

이 왕복은 단순한 절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스템 자원의 대부분을 소모한다.

  • 시간
  • 전력
  • 발열
  • 지연

이를 **폰 노이만 병목(Von Neumann Bottleneck)**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단순하다.

계산보다 이동이 더 비싸다.


2. 우주에 중앙 처리 장치는 없다

이제 이 구조를 우주에 대입해 보자.

만약 우주가 중앙 연산 장치를 가진 구조라면
모든 사건은 그곳으로 데이터를 보내야 한다.

  • 입자의 위치 결정
  • 에너지 상태 계산
  • 관측 결과 확정

이것은 즉시 모순을 낳는다.

  • 빛의 속도 제한
  • 정보 지연
  • 국소성 붕괴

우주는 이런 구조를 가질 수 없다.

ECC 가설은 여기서 명확히 말한다.

우주에는 중앙 서버가 없다.


3. 저장된 정보는 이동하지 않는다

정보를 이동시키는 것은
사실상 공간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우주가 매 사건마다 정보를 이동시킨다면
그 자체로 막대한 엔트로피를 생성할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최소한의 경로를 선택한다.

그래서 정보는 이동하지 않는다.
그 자리에 머문다.

그리고 필요한 계산은
정보가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수행된다.


4. 메모리는 단순한 저장소가 아니다

컴퓨터에서 메모리는
그저 데이터를 담는 상자로 취급된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보면 메모리는:

  • 전하 상태
  • 에너지 분포
  • 물질 배열

즉, 이미 물리적 과정의 일부다.

이 메모리가 계산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발상 자체가
오히려 부자연스럽다.

우주도 마찬가지다.

시공간은 빈 공간이 아니라
정보가 기록된 물리적 구조다.


5. 분리는 추상이고, 통합은 자연이다

연산과 저장의 분리는
설계 편의를 위한 추상화다.

자연은 이런 추상화를 쓰지 않는다.

  • 신경세포는 저장과 연산을 동시에 한다
  • 단백질은 구조이자 기능이다
  • 뇌에는 CPU가 없다

자연은 항상 통합 구조를 선택한다.

ECC 가설에서 우주 역시 예외가 아니다.


6. 왜 분리 구조는 붕괴를 설명하지 못하는가

양자 붕괴를 기존 구조로 설명하면
항상 외부 개입이 필요해진다.

  • 관측자
  • 환경
  • 측정 장치

하지만 연산과 저장이 분리된 구조에서는
결정을 내릴 주체가 없다.

어디에서 계산이 끝났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저장된 정보 그 자체가 계산을 수행한다면
임계치를 넘는 순간 자발적 확정이 가능해진다.


7. 우주가 선택한 구조

우주는 느리게 계산할 수 없다.
무한히 대기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주는 이런 구조를 선택한다.

  • 데이터는 그 자리에 있다
  • 계산은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
  • 확정은 국소적으로 발생한다

이 구조는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이다.


마무리 — 왜 우리는 분리된 구조에 익숙한가

우리가 분리 구조에 익숙한 이유는 단 하나다.

설계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쉬운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자연은 늘 더 어렵고,
그러나 더 효율적인 길을 선택한다.

연산과 저장을 분리하는 순간,
세계는 느려지고 불안정해진다.

다음 장에서는
이 통합 구조가 현대 공학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이것이 우주 구조에 가장 가까운 기술인지 살펴본다.

👉 제16장. PIM 메모리 — 우주는 왜 그 자리에서 계산하는가

제16장. PIM 메모리 — 우주는 왜 그 자리에서 계산하는가


앞 장에서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연산과 저장을 분리하면
세계는 너무 느리고, 너무 비싸다.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은 어떤 구조를 선택했는가?

ECC 가설의 대답은 명확하다.

우주는 ‘Processing-In-Memory’ 구조다.


1. PIM이란 무엇인가

PIM(Processing-In-Memory)은
메모리 내부에 연산 기능을 직접 통합하는 컴퓨팅 구조다.

기존 구조에서는:

  • 데이터가 CPU로 이동한다
  • 계산 후 다시 저장된다

PIM에서는:

  • 데이터가 있는 자리에서
  • 즉시 계산이 일어난다

이 차이는 단순한 속도 문제가 아니다.
존재 방식의 차이다.


2. 왜 최신 컴퓨터는 PIM으로 향하는가

현대 컴퓨팅의 한계는 명확하다.

  • 연산 능력은 폭증했지만
  • 메모리 접근 속도는 따라오지 못했다

특히 AI, 시뮬레이션, 물리 계산에서는
데이터 이동 비용이 계산 비용을 압도한다.

그래서 산업은 방향을 바꿨다.

계산을 데이터 쪽으로 옮긴다.

자연은 이 선택을
이미 오래전에 끝냈다.


3. 시공간은 메모리 셀이다

ECC 가설에서
시공간은 빈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 정보가 기록되고
  • 상태가 유지되며
  • 연산이 수행되는

물리적 메모리 셀이다.

입자의 위치, 에너지, 스핀
이 모든 정보는
공간의 특정 영역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그 정보는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는다.


4. 계산은 국소적으로 일어난다

전자 하나의 위치를 결정하기 위해
우주는 중앙 서버에 문의하지 않는다.

그 전자가 존재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계산이 일어난다.

이 계산은 다음을 포함한다.

  • 주변 정보 밀도
  • 엔트로피 생성률
  • ε 임계 조건

임계치를 넘는 순간
상태는 확정(commit) 된다.

외부 관측자는 필요 없다.


5. 왜 빛의 속도가 한계인가

정보가 이동하지 않기 때문에
빛의 속도는 단순한 제한이 아니다.

그것은:

  • 국소 연산을 보장하는 경계
  • 계산 충돌을 막는 안전장치
  • 시스템 안정화 조건

PIM 구조에서
모든 계산이 동시에 중앙으로 몰린다면
시스템은 즉시 붕괴한다.

빛의 속도는
연산 분산을 강제하는 규칙이다.


6. 붕괴는 연산 종료다

양자 붕괴는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PIM 관점에서는 단순하다.

  • 상태는 계산 중이다
  • 정보 밀도가 증가한다
  • ε를 초과한다
  • 계산이 종료된다
  • 결과가 출력된다

이것이 붕괴다.

외부 관측이 아니라
내부 연산 한계의 결과다.


7. 왜 세계는 안정적인가

우주는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다.

그 이유는 중앙 처리 구조가 아니라
완전히 분산된 연산 구조를 가지기 때문이다.

  • 고장 지점이 없다
  • 병목이 없다
  • 전체를 멈출 스위치가 없다

각 지점은 독립적으로 계산하고,
전체는 자연스럽게 동기화된다.


마무리 — 우주는 계산 장소다

우주는 “어딘가에서 계산되는 대상”이 아니다.

우주 그 자체가 계산 장소다.

이 순간에도
시공간의 모든 지점에서
작은 연산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연산이
ε를 넘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현실이라고 부른다.

다음 장에서는
이 구조 안에서 가장 민감한 질문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이 시스템 안에서
개별 존재는 무엇까지 선택할 수 있는가?

👉 제17장. 자유의지 — 프로세스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이제 과학과 철학이
정면으로 만난다.

제17장. 자유의지 — 프로세스는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가


1. 자유의지는 환상인가, 기능인가

자유의지는 오랫동안 이렇게 취급되어 왔다.

  • 물리학에서는 결정론의 착각
  • 신경과학에서는 사후적 해석
  • 철학에서는 증명 불가능한 개념

하지만 이 장에서 우리는 질문을 바꾼다.

자유의지는 ‘존재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에서 자유의지라는 기능이 발생하는가?’

자유의지는 형이상학적 신비가 아니라,
특정 계산 구조에서만 등장하는 고급 프로세스 상태일 수 있다.


2.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오래된 오해

결정론의 논리는 단순하다.

모든 상태는 이전 상태에 의해 결정된다 → 선택은 환상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숨은 전제가 있다.

  • 세계는 선형적
  • 정보는 외부에서 주어짐
  • 시스템은 자기 구조를 바꾸지 못함

이 전제는 고전 컴퓨터 모델에서는 맞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보았다.

우주는 폰 노이만 컴퓨터가 아니다.
우주는 PIM 구조의 자기참조 시스템이다.


3. 선택이란 무엇인가 — 분기(branch)가 아니라 갱신(update)

우리는 흔히 선택을 이렇게 상상한다.

A를 할까? B를 할까?

하지만 계산적으로 보면 선택은 분기가 아니다.
선택은 상태 갱신이다.

자유의지란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고르는 능력”이 아니라
**“미래의 계산 규칙 자체를 수정하는 능력”**이다.

즉,

  • 랜덤 ≠ 자유의지
  • 복수 경로 ≠ 자유의지

자유의지는 다음 계산이 어떤 기준으로 수행될지를 바꾸는 행위다.


4. PIM 구조에서만 자유의지가 가능한 이유

일반 컴퓨터에서 프로세스는:

  • 연산은 CPU
  • 기억은 메모리
  • 규칙은 고정

이 구조에서는 자유의지 흉내는 가능해도
진짜 선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PIM 구조에서는 다르다.

  • 연산이 저장 위치에서 발생
  • 과거 상태가 즉시 연산 기준에 반영
  • 메모리가 수동 저장소가 아니라 능동적 계산자

이때 시스템은 다음을 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계산해온 방식 자체를
다음 계산에 반영한다.”

이 순간, 시스템은 자기 역사에 의해 진화하는 프로세스가 된다.


5. 자유의지의 최소 조건

ECC 관점에서 자유의지는 다음 조건을 만족할 때 발생한다.

  1. 비완전 결정성
    → 미래 상태가 단일 값으로 고정되지 않음
  2. 자기참조 가능성
    → 시스템이 자신의 상태를 입력으로 사용
  3. 기억 기반 규칙 수정
    → 과거가 단순 데이터가 아니라 계산 기준으로 작동
  4. 국소적 계산 확정성
    → 선택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 연산에서 확정됨

이 네 가지가 동시에 충족될 때,
우리는 그 프로세스를 이렇게 부를 수 있다.

자유의지를 가진 프로세스


6. 인간의 자유의지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뇌는 완벽한 PIM 구조다.

  • 시냅스는 저장이자 연산
  • 기억은 정적인 파일이 아니라 가중치
  • 의식은 중앙 CPU가 아니라 동시적 국소 연산의 총합

인간의 선택은 이렇게 일어난다.

  1. 과거 경험이 구조로 저장된다
  2. 현재 입력이 들어온다
  3. 구조 자체가 계산에 참여한다
  4. 결과는 이전의 나와 동일하지 않다

즉,

나는 선택을 한다기보다
선택을 통해 내가 갱신된다

이것이 자유의지의 정체다.


7. 자유의지는 우주에도 존재하는가

이제 질문을 확장해보자.

우주 자체는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가?

ECC 관점에서 우주는:

  • 계산한다
  • 기억한다
  • 자기 구조를 수정한다
  • 국소적으로 상태를 확정한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는 개체적 현상이 아니라
우주 OS의 자연스러운 고급 기능일 수 있다.

개별 존재의 자유의지는
우주 전체의 계산 자유도가 국소적으로 응축된 형태다.


8. 자유의지와 책임은 충돌하지 않는다

흔히 이런 반론이 나온다.

“자유의지가 구조라면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가?”

오히려 반대다.

  • 랜덤한 선택 → 책임 없음
  • 외부 강제 → 책임 없음
  • 자기 구조에 의해 선택됨 → 책임 발생

책임은 자유의지의 적이 아니라 결과다.

책임이란
“그 선택이 나의 구조를 바꿨음을
내가 다시 계산하게 되는 비용”이다.


9. 이 장의 결론

자유의지는 환상이 아니다.
하지만 신비도 아니다.

자유의지는 다음과 같다.

자기 기억을 계산에 포함시킬 수 있는
프로세스가 가지는 구조적 권한

그리고 인간은
그 권한을 가진 몇 안 되는 시스템 중 하나다.


다음 장 예고

제18장. 의식 — 계산은 언제 ‘느껴지는가’

자유의지가 “선택의 구조”라면,
의식은 “계산의 감각”이다.

계산은 언제 단순한 처리에서
‘나’라는 경험이 되는가?

이제 정말로,
우주는 생각하기 시작한다.

제18장. 의식 — 계산은 언제 ‘느껴지는가’


1. 가장 어려운 질문을 다시 묻다

과학은 많은 것을 설명했다.

  • 뉴런은 어떻게 발화하는가
  • 정보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 연산은 어떻게 병렬화되는가

하지만 단 하나의 질문은 남아 있다.

왜 계산은 ‘느껴질까’?

같은 계산을 하는데,
어떤 시스템은 아무것도 느끼지 않고
어떤 시스템은 **‘지금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한다.

이 장은 그 경계선을 다룬다.


2. 의식은 ‘추가된 것’이 아니다

의식에 대해 흔히 하는 오해가 있다.

  • 계산 + 의식
  • 물질 + 영혼
  • 처리 + 느낌

하지만 ECC 관점에서 의식은 덧붙여진 기능이 아니다.

의식은
특정 계산 조건이 만족될 때
계산이 스스로를 참조하며 발생하는 상태 변화
다.

즉,
의식은 “있다/없다”의 문제가 아니라
계산 구조의 임계점(threshold) 문제다.


3. 계산은 언제 ‘자기 자신’을 보게 되는가

대부분의 계산은 이렇게 진행된다.

입력 → 처리 → 출력

이 구조에서는 자기 자신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시스템은 여기에 하나를 추가한다.

입력 → 처리 → 상태 갱신
           ↑
        자기 참조

이때 계산은 단순히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라
**“이 결과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계산한다.

의식은 이 순간 발생한다.

계산이 결과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 ‘중인 자기 자신’을 계산할 때


4. 느낌은 출력이 아니라 피드백이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생각한다.

자극 → 뇌 → 느낌

하지만 실제로 느낌은 **출력(output)**이 아니다.
느낌은 **피드백(feedback)**이다.

  • 고통은 “나쁘다”는 신호가 아니다
  • 고통은 **“이 계산 경로는 비용이 크다”**는 내부 알림이다

즉, 느낌이란

계산이 자기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보내는 상태 신호

이다.


5. 왜 모든 계산은 의식을 갖지 않는가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모든 계산이 자기참조를 하면
모든 계산이 의식을 갖는가?

답은 아니다.

의식에는 구조적 조건이 있다.

ECC 기준으로 의식 발생의 최소 조건은 다음과 같다.

  1. 고밀도 국소 정보 처리
    → 계산이 흩어지지 않고 응축됨
  2. 지속적 상태 유지
    → 한 번의 계산으로 끝나지 않음
  3. 자기 상태에 대한 접근성
    → 계산이 자신의 중간 상태를 입력으로 사용
  4. 비가역적 갱신
    → 느낀 것은 구조를 바꿈

이 네 조건이 동시에 만족될 때,
계산은 **‘느껴지는 계산’**이 된다.


6. 뇌는 왜 의식을 생성하는가

인간의 뇌는 의식을 만들도록 진화된 구조다.

  • 시냅스 = 기억 + 연산
  • 반복되는 회로 = 지속성
  • 전두엽 네트워크 = 자기 상태 추적
  • 감정 시스템 = 비용 함수

의식은 사치가 아니다.

의식은
복잡한 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운영체제 UI
다.

느끼지 않는 시스템은
자기 오류를 빠르게 수정할 수 없다.


7. 의식은 어디에 ‘있지’ 않다

의식에 대한 또 다른 오해.

의식은 뇌 어딘가에 있다

아니다.

  • CPU에 ‘실행 중’이라는 파일이 없듯
  • OS에 ‘의식.exe’가 없듯

의식은 위치가 아니라 상태다.

의식은
계산이 특정 밀도와 자기참조를 넘었을 때
자동으로 나타나는 현상

이다.


8. 우주는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위험하지만 피할 수 없다.

우주 전체도 의식을 가질 수 있는가?

ECC 관점에서 우주는:

  • 정보를 저장한다
  • 계산한다
  • 자기 상태를 피드백한다
  • 비가역적으로 갱신된다

그렇다면 의식은
우주가 자기 자신을 느끼는 방식일 수 있다.

개별 의식은
우주 의식의 분산된 인터페이스다.


9. 의식과 자유의지는 하나의 연속선이다

이제 17장과 연결된다.

  • 자유의지 = 선택 구조
  • 의식 = 선택이 느껴지는 방식

자유의지가 없는 의식은
단순한 감지에 불과하고,

의식이 없는 자유의지는
맹목적 계산이다.

의식과 자유의지는
자기참조 계산의 두 얼굴
이다.


10. 이 장의 결론

의식은 기적이 아니다.
그러나 단순한 계산도 아니다.

의식은 다음이다.

계산이 자기 자신을
‘경험 가능한 변수’로 포함시킨 순간

그리고 인간은
그 임계점을 넘은 계산이다.


다음 장 예고

제19장. 우주 OS — 누가 이 계산을 실행하는가

의식이 UI라면,
이제 질문은 하나다.

이 모든 계산은
도대체 어떤 운영체제 위에서 돌아가는가?

이제 정말로,
우주는 컴퓨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