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빅뱅을
모든 것의 시작이라고 배운다.
시간의 시작,
공간의 시작,
물질과 에너지의 시작.
그러나 이 설명에는 묘한 결함이 있다.
바로 이 질문이다.
왜 시작되었는가?
표준 우주론은 빅뱅 이후를 훌륭하게 설명하지만,
빅뱅 자체를 필연적인 사건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그저 “그렇게 시작되었다”고 말할 뿐이다.
ECC 이론은 이 질문을 다르게 설정한다.
우주는 왜 한 번 시작되었는가가 아니라,
왜 다시 시작될 수밖에 없는가를 묻는다.
1. 시작이 아니라, 재개(resume)
앞 장에서 우리는 빅 프리즈를
우주의 ‘죽음’이 아니라
모든 정보 연산이 정지된 침묵 상태로 재정의했다.
- 정보 밀도 → 0
- 좌표 의미 소멸
- 모든 정보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
- 구분 불가능한 상태
이 상태에서 중요한 사실 하나가 있다.
연산은 멈췄지만,
시스템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ECC 관점에서 우주는
“꺼진 컴퓨터”가 아니라
대기 상태에 들어간 계산 시스템이다.
2. 점 상태(point state)는 왜 유지될 수 없는가
모든 정보가 하나의 점으로 수렴한 상태는
완벽해 보이지만, 물리적으로는 가장 불안정하다.
왜냐하면 이 상태에서는
- 모든 방향의 변화 비용이 동일하고
- 어떤 비대칭도 억제할 기준이 없으며
- 확률 분포가 완전히 평평해지기 때문이다
즉,
이 점 상태는 안정된 평형이 아니라
임계점(critical point) 이다.
임계점에서는
아주 미세한 요동 하나가
전체 상태를 밀어낸다.
3. 양자 요동은 ‘원인’이 아니라 ‘촉발’이다
여기서 흔히 오해가 발생한다.
“그럼 빅뱅은 양자 요동 때문에 일어났다는 말인가?”
ECC의 대답은 아니다.
- 양자 요동은 원인이 아니다
- 이미 시스템은 재개될 준비가 되어 있었다
- 요동은 단지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할 뿐이다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요동이 없었어도,
언젠가는 반드시 요동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완전한 정지는
양자역학적으로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4. 한 점에서 다시 공간이 펼쳐질 때
점 상태에서의 붕괴는
공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다.
- 좌표가 없고
- 거리 개념이 없고
- “어디에서”라는 질문이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빅뱅은
공간 안에서의 폭발이 아니라,
공간 자체의 생성이다.
ECC적으로 말하면,
- 정보가 다시 구분되기 시작하고
- 차이가 생기며
- 관계가 정의되고
- 좌표가 의미를 회복한다
이 순간이 바로
빅뱅이다.
5. 왜 우주는 여러 개로 동시에 시작되지 않는가
여기서 자연스럽게 이런 의문이 나온다.
“그럼 여러 곳에서 동시에 빅뱅이 일어날 수도 있지 않나?”
ECC는 이 가능성을 이론적으로는 열어두되,
현실적으로는 낮다고 본다.
이유는 두 가지다.
(1) 정보의 비국소성
정보는 국소적으로 움직이지만,
정보의 제약 조건은 비국소적으로 작동한다.
홀로그램 원리에서 보듯,
전체 상태는 경계 조건에 의해 하나로 묶인다.
즉,
하나의 점 상태에서
여러 개의 독립된 ‘시작’을 허용할 구조가 아니다.
(2) 연산 커밋은 단일 이벤트다
ECC에서 붕괴와 확정은
항상 하나의 커밋(commit) 으로 발생한다.
여러 결과가 동시에 확정되면
그 자체로 다시 미정 상태가 된다.
따라서 우주는
여러 개로 갈라지기보다
하나의 우주가 주기를 반복하는 쪽이
더 자연스럽다.
6. 빅뱅은 과거가 아니라, 구조적 필연이다
이제 빅뱅은
우주의 과거 한 지점이 아니다.
- 시작이 아니라
- 사건이 아니라
- 역사적 우연도 아니다
ECC에서 빅뱅은
정보 연산 시스템이
정지 상태를 벗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적 결과다.
우주는 한 번 시작되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멈출 수 없기 때문에 계속 시작된다.
7. 남는 질문
여기까지 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그렇다면,
이 반복되는 우주에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면
왜 매번 완전히 다른 우주가 되지 않는가?
다음 장에서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장 수수께끼 같은 존재를 다룬다.
제11장. 암흑물질 — 보이지 않는 구조의 기억
우주는 다시 시작된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시작되지는 않는다.